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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살롱

[폴 블룸] 공감의 배신

by MUWII 2023. 2. 17.

 

폴 블룸/ 공감의 배신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을 말할 때 우리는 종종 공감을 잘하느냐, 못 하느냐로 나눌 때가 많다. 그리고 나 또한 공감하는 마음은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참으로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생각에 절대적으로 반대를 하며 오히려 공감이 우리의 이성적 판단을 흐리는 요소라 말하고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은 공감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 자세한 설명과 예시를 제시하며, 우리가 선의를 판단하는 기준은 공감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공감에 비롯한 마음은 자신의 기준과 경험에 빗대어 대의를 저버리고 편애해 버릴 수 있는 감정이라 말한다. 사실 생각해 보지 못한 공감의 폐해이다. 공감이라 하면 무조건 착한 감정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상대방의 고통과 감정을 동일하게 느껴 오히려 감정적이고 편협한 판단에 치우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꽤나 새로운 정보였다. 게다 공감을 느끼려고 노력하는 것 또한 딱히 건강한 상태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불쾌한 스트레스만을 받을 뿐이라는 것도 흥미로웠다. 우리가 굳이 공감이라는 정서를 가지지 않아도 보편적인 타인에 대한 연민으로 상대방의 어려움을 알 수 있으며, 보다 이성적 기준을 가지고 타인의 어려움을 대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큰 요지인 듯하다. 공감은 이성적인 판단이라기보다는 감정에만 치우친 느낌이라는 것이 우세한 듯하다. 여러모로 동의가 되는 부분도 있고,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공감이라는 감정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된 것 같다. 이것 또한 하나의 감정이기 때문에 감정 중심 사고로 치우칠 수 있다. 게다 내가 공감했다는 그 감정이 진실로 상대방을 이해한 것인지도 불확실한 것이다. 우리는 공감했다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르며, 그 기준으로 상대방을 바라보고 도우려 하며 판단하려 했을 수도 있다. 우리는 공감을 해야만 한다고 배우고 있으며, 공감하는 법을 알고자 한다. 하지만 사실 공감이라는 것은 배울 필요가 없는 감정일 수도… 우리는 오히려 정확한 상황판단과 그에 따른 이해를 하려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한 이런 생각도 든다. 보다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 공감이라는 감정이 부정확할수도 있다는 것인데, 한편으로는 참 차갑게도 느껴진다. 누군가의 고통과 슬픔에 동화되어 그것이 내 일인 것 마냥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감정을 쓸데없다고 치부하기에도 그 가치가 너무 평가절하된다.
 이 책을 통해서 그 뜨거운 감정이 오히려 우리의 판단에 오답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알았다고 할까. 그렇다고 공감을 버릴 것은 아니지만 같이 슬퍼하는 그 감정 아래에 내가 올바른 생각과 시각으로 상황을 대하고 있는지 신중하게 차가운 머리를 내세울 만도 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공감이 나를 배신하지 않도록. 

 




[보관 글귀]

이런 쟁점들은 단순히 정책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일상적인 관계에서 서로에게 친절하게 대하려면, 공감능력을 발휘하는 것보다 자제력과 사고력을 발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특정인에 대한 공감보다는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연민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실제로 공감능력이 높은 사람은 타인의 고통에 지나치게 동화될 위험이 있다. (p53)

그가 느끼는 괴로움을 나도 느끼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느끼는 괴로움을 굳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그가 고통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내가 이해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인지적 공감’이다. (p55)

나는 이제까지 공감에는 스포트라이트의 성질이 있기 때문에 공감은 형편없는 도덕지침이라고 주장했다. 공감은 편향되기 쉽고 간단한 산수조차 할 줄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여기에 덧붙여서 나는 이제 공감하는 사람들이 공감 때문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려 한다. (p184)

불교 경전은 ‘감정적인 자비’와 ‘대자비’를 구분한다고 말한다. 전자는 우리가 공감이라고 부르는 것에 해당하고, 후자는 우리가 단순하게 ‘연민’이라고 부르는 것에 해당한다. 감정적인 자비는 ‘보살을 지치게 하기 때문에’ 피해야 하고, 대자비는 추구해야 한다. 대자비는 연민의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조심스럽게, 무기한으로 지속된다. (중략) “공감과 달리, 연민은 타인의 고통을 공유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연민의 특징은 타인의 행복을 증진하려는 강한 동기와 더불어 따뜻함, 관심, 배려의 감정이다. 연민은 내가 타인에게 느끼는 것이지, 타인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것이 아니다.” (p186)

공감은 즉각적인 생각에 따라 움직이는 까닭에, 공감에 의존하면 지나치게 관대한 부모가 되기 쉽고 지나치게 집착하는 친구가 되기 쉽다. 공감은 공평하고 공정한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도구가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종종 친밀한 관계를 망가뜨린다. 우리는 공감이 없을 때 이런 일을 훨씬 더 잘할 수 있다. (p216)

반사회적 인경장애를 치료하는 유명한 치료법들은 사이코패스들에게 나타나는 가장 핵심적인 결핍이 공감능력 결핍이라고 본다. 여기에서 다시 인지적 공감과 정서적 공감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지적 공감을 완벽하게 해내는 사이코패스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타인의 마음을 읽는 데 능숙하다. 그들이 사기를 잘 치고 이성을 잘 유혹하고 사람들을 잘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인지적 공감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건 정서적 공감능력이다. 사이코패스는 타인의 고통을 봐도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p260)

“이렇듯 자기애라는 강한 충동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은 인간애라는 온화한 힘도 아니고, 조물주가 인간의 마음에 점화한 박애심이라는 연약한 불꽃도 아니다. 그런 경우에 작용하는 것은 더욱더 강력한 힘이고 더욱더 설득력 있는 동기다. 그것은 이성, 원칙, 양심, 마음속의 거주자, 내면의 인간, 우리 행위의 위대한 재판관이요 중재인이다.” (p309)

싱어는 이런 이타주의자들이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설명할 때 강렬한 느낌이나 감정적 충동을 암시하는 언어보다는 합리적인 생각을 암시하는 언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고 지적한다.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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