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2021년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근래 부쩍 글에 관심이 갔다. 그래서 서점에서 이 책을 보는 순간 젊은 작가들이 어떤 내용으로 글을 쓰며, 어떻게 글을 썼길래 상을 받았을까 하는 궁금증에 읽어보게 되었다. 솔직히 수상 작품집이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지만, 세상에나! 이렇게나 참신하고 재미있다니. 게다 작가마다의 필체와 주제를 그려내는 방법, 주제 의식등이 다양하고 서로 달라 글 읽는 맛도 났다. 사회 약자와 성소수자, 퀴어에 대한 주제가 많아 공동 주제로 글쓰기가 있었나? 라는 생각은 문뜩 들었다. 수상작 모두 여성 작가라는 점도 눈에 띄었다.
목차는 아래와 같으며, 전하영 작가의 작품이 대상을 받았다.
전하영 -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김멜라 - 나뭇잎이 마르고
김지연 - 사랑하는 일
김혜진 - 목화맨션
박서련 -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서이제 - 0%를 향하여
한정현 -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
미술 전시를 가면 서로 다른 작가의 특성이 확 눈에 들어온다. 과연 글도 그럴까?
이 책을 읽어보면 그 궁금증이 풀리게 된다. 성소수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더라도 이 작가는 이렇게, 저 작가는 저렇게이다. 누구는 유머러스하게, 누구는 담담하게, 누구는 미스터리하게, 누구는 친숙하게 글을 그리고 있다. 이래도 재미나고 저래도 재미나는 글 솜씨에 시간 순삭하며 읽었다.
역시 대상의 글은 깔끔하고 담백한 묘사 속에 허를 찌르는 유머와 물음, 정의가 있었다고 할까. 누구나 공감이 갈 만한 구절이 많은 글로 기억이 된다. 여성을 조롱하듯 가볍게 여기는 교수한테조차 여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주인공의 기분이 나는 공감이 갔으며, 남성 중심에서의 여성의 공허함도 이해가 갔다. 흔히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가벼운 일이나 우리는 그것에 대해 이렇게 심층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간직하고 싶은 글귀를 적는 버릇이 있는 나에게 대상작에서만 유독 간직하고 싶은 글귀가 여럿 나왔으며, 아래의 구절들이다.
p47
연수와 다닐 때면 '다른 한 여자'의 역할은 항상 내 차지였다. 사랑에 빠지는 여자와 혼자 남는 여자. 세상에는 두 종류의 여자가 있었던 것이다. (중략) 연인의 탄생에는 항상 목격자가 있는 법이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이야기에는 집중하지 못하고 목격자 역을 맡은 여자에 대해 생각했다. 삭제된 분량의 삶. 나는 지난 삶의 대부분을 목격자로 살아왔으므로 남은 여자의 삶에 대해 항상 궁금해해왔다. 남자의 세계로 여자 친구를 떠나보낸, 남은 사람의 시간. 여자 주인공의 특별함을 돋보이게끔 하기 위해 평범함의 기준처럼 제시되는 삶. -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中
p55
여자는 두 종류라고 말하곤 했다. 매사에 분명한 여자와 미스터리를 남겨두는 여자. 그리고 이는 남자가 여자를 볼 때 가장 먼저 감지하는 것이자, 가장 먼저 그를 매료시키거나 그렇지 않게 하는 요소였다. -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中
하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은 박서련 작가의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이다. 이 작품은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문장이 짧고 가볍고 쉬우면 확실히 그 가벼운 무게감때문인지 글이 쉽게 읽힌다. 그리고 재미있다. 박서련 작가의 작품이 딱 그러했지만, 가지고 가는 주제만큼은 절대 가볍지가 않았다. 오히려 그 가벼움 속에 묵직한 주제가 있어 계속 생각하게 만들었다. 게다 해학적이고 반전이 있었다. 읽는 내내 웃픈 상황이었다. 실소가 나지만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이라고 할까. 더욱이 실제 사용하고 있는 비속어나 현재를 반영하는 무수한 게임언어들, 앱이름 등등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닌 현재의 드라마를 보는 듯 했다. 여튼... 아이를 위해 게임까지 배운 엄마가 얻은 성과는 '엄마'라는 비속어였다. 엄마가 비속어라니, 욕이라니.. 정말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을 작가는 정말인지 쉽고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그 담담함 속에서 아이러니한 웃음이 나오는 작품이었다.
p230
엄마, 엄마라고 그만해. 계속 욕 쓰면 아이디 정지 먹어.
엄마가 왜 욕이야? 내가 네 엄만데.
당신은 마음을 가다듬고 적진으로 들어가 상대의 마지막 수호석을 파괴한다. 아이가 간신히 내뱉은 말이 당신의 귓전을 윙윙 돈다. XX, 울어? XX, 괜찮아? 모니터에는 승리를 알리는 메시지가 뜨지만 당신은 더이상 승자의 기분을 느끼지 못한다. -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中
서이제 작가의 '0%를 향하여'는 흥미로운 구성으로 독립영화에 대해 풀어나간다. 짧은 단락 단락들이 모여 큰 주제를 그려나간다. 미술로 말하면 약간 꼴라쥬와 같은 느낌이랄까. 사람들의 대화도 서술마냥 풀어나가는 형식도 인상 깊었다. 현장의 순간 순간이 살아나는 글의 형식이었다. 그 순간에서 독립영화가 처한 현실과 그것을 이끌어 가고 있는 사람들의 심정,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대중 가치보다 소수의 가치를 이끌어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선택이며, 우리는 그것에서 왜 큰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것일까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대중의 선호도를 끌고 가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지금의 현실이 과연 옳은 것이며, 그런 고민 없이 자신만의 가치를 그려내는 세상이 오면 안되는 것일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런 세상이 오게 된다면 어떤 세상의 형태를 띄고 있을까도 상상해 보았다. 여튼 지금의 모습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상향이기는 하다. 그런 물음들을 끄집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래의 글인 것 같아 적어 보았다.
p280
선생님 독립영화가 뭐예요? 그래서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영화라고 했어. 그랬더니 그애가 다시 묻더라. 그럼 왜 자본으로부터 독립하냐고. 창작자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서.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상업에서 다룰 수 없는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 때때로 사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좋은 실패가 가능하고,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돈이 많으면 많은 걸 할 수 있지만, 돈 때문에 할 수 없는 일도 분명 있으니까. (중략) 선생님, 독립영화 감독 되면 정말 그렇게 다 불행해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 응, 불행하지 그럼. 근데 감독이 못 되어도 불행해.
- 0%를 향하여 中
이 책은 간직하고 싶은 책 중의 하나가 되었다. 글을 쓰고 싶을 때 한번씩 꺼내서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년 수상작을 찾아 읽어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근래 외국 소설만 읽다 한국 소설을 읽게 되니 역시 글 맛이 있다. 외국의 번역본과 달리 글을 가지고 노는 작가들의 글을 읽으니 맛깔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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